고정관념과의 싸움, 편집
After Effect로 숫자가 날아와 박히는 CG를 만들고 출력해 확인했다.
3초짜리 시커먼 동영상이 뜬다.
'어, 이건 뭐지?'
애프터 이펙트 편집 화면을 보면 문제없는데 왜 그랬을까 고민하며 다시 출력 세팅을 조몰락.
High Quality 해상도도 확인하고, 코덱도 다른 거로 바꿔보고...
그런데 다시 뽑아서 확인해도 여전히 시커먼 동영상이다.
'너무 짧아서 그런가?'
기존에 만든 컴프에 7초 정도 스틸을 붙여서 10초짜리를 만들었다.
이번엔 출력에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역시나 10초짜리 블랙이다.
'이런 애프터 이펙트가 맛이 갔군. 절대 내 잘못이 아닌데...'
한 시간 이상 여기저기 고민하며 주무르다 보니 진이 빠져 멍하니 동영상을 바라보는 데
문득 화면에서 블랙과 블랙 사이의 희끗한 움직임이 보인다.
'저건 뭐지? 아....'
애프터 이펙트 편집 화면에서는 체크무늬 배경 (영어로는 Checkered background; Transparent texture; Vector grid pattern; Gray and white backdrop이라고 다양하게 부르는군 ㅎ)만 믿고
그대로 키값이 빠져서 저장될 줄 알았는데,
그냥 저장하면 배경이 블랙으로 될 수밖에...
편집할 때 잘 보이라고 숫자를 블랙으로 해놓고는
저장할 때 배경의 블랙과 합쳐져 시커먼 동영상이 나온다는 생각을 못했다.
출력 옵션을 찾아가 High Quality with Alpha로 해두니
키값이 매끈하게 빠지는 동영상이 순식간에 출력되어 나온다.
'왜 이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못하고 하던 대로만 하려 했을까?'

얼마 전 회사 공용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네이버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다 만들고 나서 실명인증을 하는 아이콘이 있어 누르고 들어가니
아이핀, 마이핀 등등 너무 복잡해서 평소 내가 '혐오'하는 단어들이 나온다.
'참고 그냥 하자. 얼마 안 걸릴 거야'
하라는 대로 하고, 입력해달라는 내용 입력하고 나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기존에 이미 3개의 계정을 실명 인증해서 이건 안된단다.
'어? 내 계정은 지금 두 갠데...'
네이버에서 보여주는 계정을 확인하니 2009년에 생성된 처음 보는 아이디가 눈에 들어온다.
지우려고 했더니 지금 정지 먹어서 그 계정으로 로그인해 정지를 풀고 난 다음 지울 수 있단다.
'아 어떤 망할 넘이 내 명의로 만들었군.
내가 만든 게 아니라서 비번을 모르는데...
네이버 고객센터에 연락해서 지워달라 해야겠다'
홈피에 들어가 여차저차 고객센터를 찾아가니 여기서부터가 또 고난이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나열하면서 해당되는 걸 누르라하고,
그렇게 해서 들어가면 또다시 아이핀, 마이핀 타령이다.
암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친절하고 참을성 있게.
그런데, 영 반응이 마뜩잖다.
아주 정중하면서 드라이한 동문서답.
'아 네이버도 구글처럼 AI가 답변을 쓰나 보군'
이틀 전부터 메일 보내고 24시간 이내 답변이 오길 기다리는 작업을 몇 번 하다 보니 슬슬 열이 받는다.
문제는 내 계정을 없애고 싶은데,
그 확인을 위해 내가 개인정보를 넣어야 하고,
그런데 그건 그 계정을 만든 넘이 입력한 정보와 다르고,
자꾸 네이버 AI는 마이핀의 정보와 다르다며 친절하게 내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답변만 반복하니
뭔가 무한 반복되는 블랙홀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저 아이디로 로그인하는 게 과연 불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원초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먼저 그 넘의 아이디를 넣고 비번은 잊어버렸다고 했더니,
내 명의로 된 전화번호를 입력하랜다.
'입력만 벌써 몇 번째야...'라는 짜증을 애써 누르며 폰 인증을 했더니,
쿨하게 비번을 어떻게 바꾸겠냐고 물어온다.
'아니 이렇게 쉬운 걸...ㅠㅠ'
찐한 고민과 강인한 인내의 시간 3일을 보냈는데,
정작 그 넘이 만든 아이디로 들어가 본인 인증하고 비번 바꾸고 계정 폭파하는데 3분 걸렸다.
'왜 이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못하고 가던 대로만 가려했을까?'
포토샵에서 특정 메뉴를 찾아 한참 헤매다가
그게 일러스트레이터 메뉴였다는 걸 깨닫고 좌절한 적도 많고,
프리미어 프로의 이펙트를 애프터 이펙트 메뉴에서 찾다가 맥이 빠지는 경우도 꽤 있다.
또 가끔은 '엔지니어들의 뇌구조'와 내 머리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프리미어 프로 출력 렌더링을 걸어놓고 퇴근해 다음날 아침에 열어보니
"(출력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장황하게 써놓은 뒤) error code 4"
라고 뜨길래 또 갖은 방법을 동원해 세팅을 바꾸고 코덱을 다른 거로 해보고 난리를 치다가
문득 저 소리가 뭔가 싶어 구글링 해보니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라는 의미라는 말이랜다.
그냥 저장공간이 부족하다고 하면 되지
'error code 4'라는 지들만 아는 용어로 경고를 보내는 인간들이란...ㅠㅠ
그래도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나만의 고정된 프레임'을 벗어나 상대방 입장에서 설루션을 고민하는 습관이 배어가는 중이다.
모든 시스템은 그 '설계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존재할 테니
문제가 생기면 내 해결 방식이 아닌 그들 뇌구조에서 해법을 찾으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내 풀이 방식을 고집해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해법이 아니다.
그냥 내 삶의 방식인 거지. 오래고, 고정된.